이순신경영학 시리즈는 서강대 지용희교수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경제신문에 실었던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최근 TV 드라마에서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되고 있고 나라와 경제가 위기에 처한 지금 이순신과 같은 인물을 기다리는 나날들입니다. 경영학자들은 이순신의 리더십을 최근 기업이 필요로 하는 변혁적 리더십의 대표적 사례라 평가하고 있고 지용희교수는 대표적인 주장자입니다.

 

변혁적 리더십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른 리더십으로서, 신유근교수는, " 조직전체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으로서 이상주의를 표방하고, 구성원들에게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구성원들 개개인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즉, 부하를 임파워먼트시키는 리더의 리더십" 이라고 합니다.

 

나라가 어려운 위기에 처했을 때 미약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면 어려운 곳에 처하여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이 고통에 시달리다 보면 결국 그 고통은 큰 짐이되어 사회를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잠깐만 주위를 둘러보면 바로 주변에 근로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 그것은 돈을 다 번뒤에 한꺼번에 왕창 기부하는 것보다 그때 그때 조그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려올 수록 이렇게 많은 할 일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닳는 소중한 삶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서울 관악상공회의소 상담역으로 계신 최미숙노무사가 모아 올린 글을 혼자 읽기가 아까워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이순신 경영학 1] 죽을힘 다하는 기업가 정신을… 98년 12월 9일

 

자동차왕 헨리 포드, 컴퓨터황제 빌 게이츠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기업가들이다. 거의 빈 손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냈다.

과연 무엇으로 가능했을까.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자금난.인재부족 등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용기와 결단, 희생의 감수, 솔선수범, 끈질긴 추진력 등을 발휘해 이를 극복했다.

기업가정신 없이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고전경제학의 대가인 영국의 앨프리드 마셜은 기업가정신은 기사도정신과도 같다고 했다.

일본 기업들의 강점 중 하나는 그들의 무사정신이라는 말도 있다.

이순신은 기업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업가정신의 진수 (眞髓) 를 보여주었다.

그는 상상하기 힘든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싸워 찬란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만큼 악조건아래서 싸운 장군이 있었을까. 연전연승해 국가에 말할 수 없는 공을 세웠지만 누명을 쓰고 죄인이 돼 도원수 (都元帥) 권율 (權慄)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 (白衣從軍) 하는 신세가 됐다.

세계 제일의 해군제독이 죄인이 되고 육군의 무등병 (無等兵) 으로 강등된 셈이다.

칠전량 해전에서 일본 수군에게 참패해 조선 수군이 괴멸된 후에야 임금인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해 일본 수군과 싸우도록 했다.

한마디로 병사.배.무기.군량미 없이 홀몸으로 막강한 일본 수군과 싸우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에 그와 같이 외롭고 딱한 처지의 해군사령관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당시 이순신은 억울한 죄로 시달린 나머지 마음과 몸이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분연히 일어났다.

그는 같이 싸울 수군을 모집하기 위해 일본군의 추격을 무릅쓰고 이 고을 저 고을 찾아다녔다.

텅 빈 관가의 창고를 뒤져 무기와 식량을 모으고, 칠전량 해전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12척의 배를 찾아내 남해안을 휩쓸던 일본 수군을 막을 태세를 갖췄다.

이런 와중에 조정은 12척의 배로는 도저히 2백척이 넘는 일본 수군을 막아낼 수 없다며 이순신에게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해 그는 선조에게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 (戰船) 이 있으므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적 수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전선의 수가 적고 미미한 신하에 불과하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얕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

12척으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돼 장수들도 도망가고 임금마저 전투를 포기하라고 명령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으므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적의 진격을 막을 수 있다" 고 오히려 임금을 설득하고 명량대첩이라는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순신이 12척으로 일본의 대함대를 격파했듯이, 우리 기업도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고 적절한 전략을 구사한다면 세계적인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없는 것만 탓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시설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그리고 배경이 없어서 할 일을 못한다고들 야단이다.

지금이야말로 이순신이 보여준 기업가정신이 필요할 때로 보인다.

 

지용희(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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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경영학 2] 정보로 무장 스피드 경영을… 98년 12월 10일

 

군사전략이든, 경영전략이든 기본은 같다.

시대가 변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2천5백년 전에 쓰여진 '손자병법' 이 오히려 새로움을 준다고 극찬하는 세계적인 전략가도 있다.

이순신이 보여준 23전23승의 전략은 이런 점에서 경제전쟁 시대에 진지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선 적이나 경쟁기업을 이기기 위해선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기의 강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고 자기의 강.약점은 물론 상대방의 강.약점도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

이순신은 이같은 전략의 기본에 충실했다.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 (潮流) 를 훤히 꿰고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 지휘관이었지만 현장답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 정보원과 정탐선을 파견해 적의 규모와 이동상황 등을 세밀히 파악했다.

이순신의 이같은 정보중시 전략은 정보화시대인 지금 더욱 긴요하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생생한 현장 정보의 수집과 활용뿐 아니라

정보고속도로.경영정보시스템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등 정보의 하부구조를 효율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순신은 지형.조류 등 자연환경과 우리 수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적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일본 수군은 칼싸움에 능해 일단 배위에서 싸우면 그들이 유리했다.

또 그들은 조총을 갖고 있었으나 화포는 미약했다.

이러한 적의 강.약점을 파악한 이순신은 화포를 집중 발사해 적선의 접근을 막으면서

이를 격침시켰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GE) 은 많은 사업체를 매각하고 세계에서 1, 2등하는 부문만 집중 육성해 세계 초일류기업이 됐다.

반면 우리 기업중엔 지나치게 많은 업종에 진출해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에선 대기업이라도 세계적인 기업과 비교하면 매우 작다.

따라서 재벌 기업이라도 전문분야를 선택해 세계 제일이 되도록 모든 자원과 노력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이순신이 일본 수군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빠른 기동력이다.

그는 일본 수군을 선제 공격함으로써 기선을 제압하고 적이 공격해올 틈을 봉쇄했다.

또 신속한 함대 운용이 특기였다.

적 함대를 공격하는 즉시 빠져나왔다.

지금 기술과 시장 등 경영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기민성이야말로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가만히 있는 목표물은 좋은 공격대상이 될 뿐이다.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으로 경쟁자가 겨냥하기 힘든 목표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환경이 돌변하고 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경영기법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류에 휩쓸려 전략의 기본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경영전략의 기본원리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유행처럼 바뀌는 기법을 좇는 것은 모래 위에 화려한 누각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렵고 급할수록 기본원리에 충실하길 권한다.

 

지용희(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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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경영학 3 ].자만하면 경쟁서 진다. 98년 12월 12일

 

이순신이 임진왜란에 철저히 대비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겸손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싸움에서 전승 (全勝) 했음에도 "나는 나라를 욕되게 했다.

오직 한번 죽는 일만 남았다" 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많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육지의 적까지 완전히 소탕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이런 자세 때문에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고 더욱 철저히 대비했을 것이다.

오만한 사람들은 임진왜란에 대한 대비랄 게 없었다.

임란 직전 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갔다 온 김성일 (金誠一) 은 "도요토미의 눈은 쥐와 같고 외모로 보나 언행으로 보나 하잘것없는 위인이니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 면서 무시하는 듯한 말로 조정에 보고했다.

전쟁 전에는 일본을 한칼에 무찌를 수 있다고 큰소리 친 장수도 막상 일이 터지자 도망만 다녔다.

오만과 자만! 이것이야말로 모든 전쟁이나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자만에 빠진 사람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하기는커녕 문제 자체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남이 문제점을 지적해 주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는 치밀하고 철저한 대비를 할 수 없다.

세계 제일의 기업이라도 그 경영자나 종업원들이 자만에 빠지면 곧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미국의 세계적 자동차회사인 GM의 경영자들은 한때 자만심 때문에 일본 자동차의 경쟁력을 과소평가했다.

일본 자동차들이 미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마치 장난감 같다고 비웃기까지 했다.

이런 오만으로 일본 자동차의 미국 진출에 소홀히 대비해 GM은 큰 손실을 보았다.

"IBM이 가는 곳에 컴퓨터 산업이 있다" 는 말이 있었듯이 세계 컴퓨터산업을 선도하던 IBM도 한때 자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GM.IBM과 같은 세계 초일류기업의 경영자들이 자만에 빠져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수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세계에서 일등을 하다 보니 인간심리상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초일류기업과는 거리가 먼 국내기업들의 경영자나 종업원들이 오만해진다면 어떻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IMF 구제금융 이전에 우리는 지나치게 자만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자기 기업과 자신의 능력을 세계 제일인 양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식 세미나석상에서 외국사람들이 자기 기업의 기술과 경영방법을 배우러 끊임없이 찾아온다고 떠벌리는 경영자도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후진국 사람들이 배우러 온 것이었다.

세계적인 초일류기업들은 자만을 경계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불평 많은 고객들을 우대하고 오히려 이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제 우리도 우물안 개구리같이 만만한 경쟁기업이나 고객만 상대하면서 오만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세계 제일의 기업을 경쟁상대로 하면서 우리의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메워나가자. 겸허한 자세로 까다로운 고객의 불평을 경청하면서 혁신을 감행해야 진짜

경쟁력이 붙게 될 것이다.

 

지용희 <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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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경영학 4 ] 완벽한 준비가 불량률 '제로'만든다 98년 12월 14일

 

이순신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예를 들어 첫번째 싸움인 옥포해전에서 26척, 한산대첩에서 59척, 명량대첩에서 1백23척의 적함을 격파하거나 나포했지만 자신의 전함을 한 척도 잃지 않았다.

 

잇따른 완패에 크게 위축된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는 일본 수군에 "이순신함대와 맞서 싸우지 말라" 는 명령을 문서로 하달하기에 이른다.

 

1998년 12월 04일 01 面(10 版)

"이순신장군과 바다싸움 말라”도요토미 직접 지령

임진왜란 초기 이순신 장군이 승리를 거듭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가 "절대 바다에서 맞서 싸우지 말라" 고 일본 수군에 공식 지령을 내린 문서가 일본에 있는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기타지마 만지 (北島万次) 일본 교리쓰 (共立) 여대 교수는 3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의 전략전술' 세미나에서 "도요토미가 '거제도에 진지를 만들고 육지에서 포를 쏠 뿐 바다로 나가지 말라' 는 내용이 담긴 문서 '협판기 (脇坂記)' 가 당시 참전 장군인 와키사카 (脇坂) 집안에 남아있다" 고 밝혔다.

기타지마 교수는 "명령서엔 도요토미의 인장이 찍혀 있으며 다카야마 (高山) 실록 등 임란 당시의 다른 문서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고 발표했다.

도요토미의 지시는 1592년 7월 8일 (이하 음력) 한산대첩의 조선군 승전이 보고된 뒤 같은 달 14일 처음 내려졌다. (중앙일보 권혁주 기자)

 

이순신이 수많은 전쟁에서 완승할 수 있었던 것은 완벽성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다.

임진왜란 전 조선은 오랫동안 평화로 군기가 해이해졌고 적당주의가 판을 쳤다. 평화에 젖으니 고된 훈련에 불평도 많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부하들을 감복시키고 고된 훈련을 이끌어 나갔다.

그 결과 그는 20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해군전략가 발라드 (G.A.Ballard) 제독이 극찬할 정도로 일사불란한 함대 운용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순신이 활쏘기 연습에 매진했던 한산도 활터에 가보면 그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대비태세를 잘 보여준다.

화살로 적을 명중시키려면 적과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거리감각이 무뎌져 다른 배에 탄 적을 정확히 겨냥하기가 힘들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순신은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활 쏘는 곳과 과녁을 배치할 수 있는 곳을 활터로 개발했다.

이런 활터는 이곳을 빼고는 국내에 없다고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완벽성에 도전해야 한다. 이 점은 세계적인 컴퓨터회사인 IBM의 기업이념이 '완전성의 추구' 라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IBM은 모든 업무.제품.서비스의 완전무결 (zero defects) 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완전성의 추구가 생활의 기본이 돼야 하고, 모든 작업이 최상의 방법으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수행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자동차는 2만여개의 부품을 조립해 만든 제품이다.

부품 1만개 중 한개의 불량품만 있어도 자동차 한대에 2개의 불량부품이 끼어들게 된다.

이 정도의 품질수준으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초일류 자동차회사들은 불량률 '제로' 에 도전하고 있다.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우리는 자동차보다도 훨씬 부가가치가 높고 복잡한 제품,

이를테면 항공기와 같은 제품에서도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항공기의 경우 부품수가 훨씬 많고 고도의 초정밀성이 필수적이므로 더욱 완벽한 작업이 요구된다.

인간은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또한 완벽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그렇다고 목표치를 낮추게 되면 의욕이 저하되고 게을러지게 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완벽성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생활의 활력소로 작용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자.

 

지용희 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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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경영학 5 ] 신뢰보다 더 큰 성공 밑천은 없다. 98년 12월 15일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괴멸된후 다시 수군통세자가 된 이순신은 빈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피난민이나 패잔병까지도 그와 함께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또 일치 단결해 용감하게 싸웠다. 그뿐 아니다. 피난을 가는 노인들까지도 그를 도우려고 애썼다.

이순신은 "노인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다투어 술병을 가져다 주는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강제로 권했다"고 난중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은 가난했지만 "신뢰"라는 재산을 크게 쌓았다는 점에서는 정말 부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그를 믿고 존경했기 때문에 기꺼이 따르고 도왔다.

그가 주위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깨끗한 몸가짐이었다.

그는 출장갈 때 지급받은 쌀에서 남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도로 가져와 반납했다. 또 상관이 자기와 친한 사람을 무리하게 승진시키려 하자 이를 강력히 반대해 저지시킨 적도 있다.

이런 성품 탓에 이순신은 윗사람에게는 미움을 사기도 했으나 부하들은 그를 진심으로 신뢰했다. 우리는 예부터 진퇴가 분명해야 훌륭하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여겼다.

이순신은 강직한 성품으로 세 번 파직당하고 두 번 백의종군했다. 이런 시련속에서도 그의 인생관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항복에 따르면 이순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장부로서 세상에 태어나 나라에 쓰이면 죽기로서 최선을 다할것이며 쓰이지 않으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충분하다. 권세에 아부해 한때의 영화를 누리는 것은 내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바다"

이순신의 부하사랑은 남달랐다. 장수로서 품위가 없다고 모함을 받을 정도로 부하들과 마음을 트며 같이 일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다. 궁색한 사람에게 입고 있던 옷을 벗어준 적도 있다.

이순신의 이같은 따뜻한 보살핌과 인간애로 인해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순신은 오랫동안 쌓은 신뢰라는 재화를 바탕으로 위급한 상황에서도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신뢰를 잃으면 한 국가나 기업도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우리가 IMF구제금융을 서둘러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도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우리를 불신해 융자해준 자금을 긴급히 회수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5백억달러가 넘었지만 제 2의 외환위기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어떤 계기로 외국인들이 우리를 또 불신하게 되면 냉혹하게 다시 자금을 회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신이 팽배한 국가는 지하자원같은 물질적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없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에선 개인 또는 기업간 거래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신뢰성이 낮다.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 만든 계약서라도 상대방의 기회주의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의 거래비용이론에서 신뢰를 중요한 재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뇌물을 없애고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며 정보공개로 투명성을 높이면서 끊임없이 나눔의 삶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신뢰라는 재산을 쌓아나가야 겠다.

 

지용희 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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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경영학 6] 전쟁터서도 꼼꼼히 일기 남겨. 1998년 12월 16일

 

이순신은 임진왜란 7년의 와중에서, 때로는 토사곽란 (吐瀉곽亂)에 시달리면서도 쉬지 않고 일기를 써 귀중한 '난중일기 (亂中日記)' 를 남겼다.

'난중일기' 에는 전쟁에 관련된 많은 기록뿐 아니라 당시 사회상에 대한 자료까지 담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그는 또 조정에 올린 장계 (狀啓)에서도 전쟁상황을 생생하게 보고했는데, 이 자료들은 현재 '임진장초 (壬辰狀草)' 로 남아 있다.

때문에 우리는 4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임란이 어떠했으며, 이순신이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이겼는지를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다.

그의 투철한 기록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고려자기를 세계에 자랑하지만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지금도 이를 똑같이 재현하지 못한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를 지닌 지식이나 기술을 기록으로 남기면 바로 국가와 후손들의 재산이 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기록은 일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지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만일 이순신이 '난중일기' 를 남기지 않았다면 후세에 큰 문화유산을 물려주지 못했음은 물론 자신의 전투에서까지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듭했을 것이다.

각종 업무를 기록하는 일지와 개인의 일기는 물론 주부의 가계부까지도 그 유용성을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금 기록을 소홀히 해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기술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기술자가 나가버리면 똑같은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10년 전까지 만들었던 제품도 보관하고 있는 기록이 없어 다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10년 전의 기술을 알지 못하는데 거기서 어떤 미래의 기술이 나올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아주 못살던 나라에서 단기간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까닭에 많은 후진국이 우리의 과거 기술을 구매하기를 원하지만 기록이 없어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화학과 교수는 자기가 하고 있는 실험을 3백여년 전 독일에서 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그 때의 자세한 실험결과를 사 본 적이 있다면서 그들의 철저한 기록정신에 놀랐다고 한다.

 

'아는 것이 힘' 이라는 말은 지금같이 경쟁이 치열한 때엔 '아는 것이 경쟁력' 이라고 바꿔야 한다. 아는 것, 즉 지식이야말로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이 때문에 지식경영이 강조되고 있다.

지식은 꾸준한 기록에 의해 축적돼야 널리 활용될 수 있다.

종업원 개개인이 갖고 있는 지식을 모아 기록하면 회사의 지식은 쌓인다.

어느 한 종업원이 나간다고 해도 회사의 업무에 지장을 받는 일이 없다.

미국 기업들은 생산.판매.구매.인사.재무.회계 등 많은 업무의 처리방법을 자세히 기록한 지침서를 만들어 실제업무에서뿐 아니라 종업원 교육용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자신의 지식을 자신만을 위해 쓰다 소멸시킬 것이 아니라 철저한 기록정신으로 더 큰 용도를 위해 남기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오늘은 바로 충무공의 4백주기가 되는 날. 전쟁터에서도 일기를 남기던 그의 치열한 모습이 유난히 눈에 선하다.

 

지용희(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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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경영학 7] 거북선같은 혁신이 필요한때… 1998년 12월 17일

 

이순신은 배를 만드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 거북선같이 뛰어난 혁신제품의 설계와 제작을 주도했다.

 

이순신의 조카로 수군에 종군한 이분 (李芬) 은 거북선의 탁월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설사 적선이 바다를 덮을 정도로 많이 몰려온다 해도 거북선이 적의 선단 속을 출입 횡행하면 향하는 곳마다 적이 쓰러졌다.

그리하여 크고 작은 해전 때마다 이 거북선으로 언제나 승리를 거두었다. "

 

기술자도 아닌 이순신이 어떻게 거북선과 같은 창의적인 제품의 설계와 제작을 주도할 수 있었을까. 이는 이순신이 일본 수군의 강점을 무력화하고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전함 개발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기술자들과 함께 거북선의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결과였다.

 

일본군은 우리에겐 없는 조총을 갖고 있었다. 또 그들은 칼싸움에 능했다.

이순신은 적의 강점인 조총을 무력화하고, 적이 우리 배에 올라와 칼싸움 할 기회를 봉쇄하기 위해 배 위를 목판으로 덮은 거북선을 만들었다.

거북선의 목판 위에는 돛을 올리고 내리기 위한 좁은 십자로를 제외하곤 모두 송곳을 꽂아 사방 어느 곳에서도 적군이 발을 디딜 수 없게 했다.

또 배 안에선 밖을 엿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배 안을 볼 수 없었고, 거북머리와 거북꼬리 부분, 배의 좌우에도 화포를 쏘는 구멍이 있어 적이 거북선을 포위하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거북선은 당시 획기적인 신제품이었다.

 

우리가 근원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신제품개발.품질향상.원가절감을 위한 기술혁신, 새로운 경영방법을 도입하기 위한 경영혁신, 새로운 판매방법을 활용하기 위한 마케팅혁신, 기업 내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혁신, 참신한 디자인을 도입하기 위한 디자인혁신, 애프터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서비스혁신 등 많은 분야에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이순신이 거북선 같은 혁신제품 개발을 주도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기업.대학 등 어떤 조직체든지 성공적인 혁신을 추진하려면 지도자나 책임자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저명한 경제학자 슘페터가 지적했듯이 혁신은 '창조적 파괴' 를 수반해야 하므로 반드시 기존의 것을 없애거나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업 책임자인 기업가나 경영자의 의지와 역할이 중요하다.

혁신 추진 여부와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원배분은 이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혁신의 중요성에 대한 경영자들의 인식이 높아가고는 있으나 아직도 경영에서 혁신을 우선 추진한다는 '전략적 의지 (Strategic Intent)' 가 미흡하다.

 

한국 경제는 이미 혁신주도 단계로 진입해야 함에도 경영자들이 아직도 저임금이나 규모의 경제에 의존한 저원가 전략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가나 경영자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혁신을 주도한다는 전략적 의지를 다져야겠다.

 

지용희(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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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경영학 8] 경제전 지휘할 경영자 키워야. 1998년 12월 19일

 

이순신 장군이 자살했다면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사한 직후부터 그의 자살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부하였으며 후에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유형 (柳珩)에 따르면 이순신은 평소에 "자고로 대장이 자기의 공로를 인정받으려 한다면 생명을 보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적이 퇴각하는 날에 죽어 유감될 일을 없애겠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숙종때 광주목사와 이조판서를 역임한 이민서 (李敏敍) 도 "이순신은 전쟁 중에 투구와 갑옷을 벗고 스스로 적탄에 맞아 사망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 자살설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순신은 모략과 음해가 판치는 세상에서 세번씩이나 자리에서 쫓겨났고 두번씩이나 백의종군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국가적 위기에서 온 몸을 다 바쳐 나라를 구했지만 전쟁 중임에도 감옥에 갇혀 죽을 뻔했다.

이런 세태 때문에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살아 남는다 해도 전쟁이 끝나면 또 다시 모함을 받아 죽게 될 것을 짐작하면서 적의 조총도 피하지 않아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순신 자살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도 많다.

이순신은 평소 생사와 화복을 천명에 맡기고 전투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관을 갖고 있었으므로 모함과 벌이 싫어 미리 자살했다는 것은 그의 인품과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순신 자살설의 진위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시 세태 때문에 이순신 자살설이 일면 설득력을 갖게 됐고, 이런 세태는 그가 전사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에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했기에 지금 우리 사회의 풍토가 크게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순신같이 청렴한 공직자가 오히려 요령없는 사람으로 '왕따' 가 되는 경우도 많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 등 각계각층에서 이런 세태가 만연하고 있음을 자신있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거의 없을 것이다.

한 국가가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자본은 인간자본 (Human Capital) 이다. 또 '기업은 사람이다' 는 말도 있다.

이같은 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인재이므로 회계학에서도 기업의 인적 자원을 자산으로 명시하는 인적자원회계 (Human Resource Accounting) 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혹독한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정부.기업 등 각계각층에서 이순신같이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순신이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유성룡.권율.조헌.이원익 같이 자기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그를 적극 지원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자신과 가깝지 않고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온다 해도 강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감싸주고 도와주는 용기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기 이익에 눈멀어 훌륭한 사람을 모함하거나 내쫓는데 앞장서거나 이런 일에 함께 휩쓸리는 공범자가 돼서는 안되겠다.

 

4백년 전의 나쁜 세태가 나라를 구한 한 영웅의 삶에 좌절을 안겼듯이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이순신들을 죽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지금 많은 이순신들을 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경제전쟁에서 패해 남이 우습게 여기는 민족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지용희(서강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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