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 변경하는 취업규칙에 대한 근로기준법은 개정되어야

1. 취업규칙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선 헌법보다 근로기준법보다 근로계약보다 취업규칙이 우선이다.

 

취업규칙에서 정한 대로 근로하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임금을 지급받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근로시간을 일해야 한다.

 

해고와 퇴직, 인사명령도 취업규칙에서 정한 바에 따른다.

 

그래서 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법적으로 다툴 때에도 취업규칙이 문제다.

 

 

예로 삼성전자 노동자가 징계해고돼 해고무효소송을 하게 되면 삼성전자의 취업규칙을 가지고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심지어 단체협약보다 취업규칙이 우선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가 징계해고돼서 사용자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게 되더라도 취업규칙상 징계절차가 어떤지를 살펴보게 된다.

 

 

이렇게 이 나라 노동자는 법과 근로계약, 단체협약이 아니라 취업규칙에 따라 일하며 살아간다. 이 나라 노동자의 지위를 특징짓는 것은 취업규칙이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처지를 알아보려면 취업규칙을 살펴봐야 한다.

 

 

2. 취업규칙은 취업규칙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만 말하지 않는다.

 

사업장에서 노동자에 대한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에 관한 준칙 일체를 말한다.

 

사규·보수(급여)규정·인사규정·징계규정 등 어떠한 규칙이라도 취업규칙이다.

 

이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작성·변경 권한을 갖는다.

 

이게 근로기준법(제93조 이하)이 이 나라 사용자에게 부여한 권력이라고 법원은 해석하고 있다. 사업장에서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에 관한 준칙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하고 변경할 권한을 갖고 이 준칙에 따라 노동자에게 근로하게 하고 복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니 사업장에서 사용자는 주인이고 노동자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근대민사법질서의 기본이 된다는 계약자유는 사업장에선 종적을 감춘다.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관해 정하는 준칙이라면 이것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면 안 된다.

 

계약자유에 따라 근로계약의 내용인 근로조건 등의 준칙을 정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노동자와 합의로 정해야 한다. 그런데 합의 없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조건 등의 준칙을 정할 수 있도록 이 나라의 법률이 정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노동자보호법이라는 근로기준법으로. 근로기준법은 상시 10인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사용자는 일정한 사항에 관한 취업규칙을 작성해 노동부장관에 신고하도록 했다(제93조). 이렇게 작성할 때는 과반수노조나 근로자과반수의 의견을 들어 하도록 했다(제94조제1항 본문). 의견만 묻고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단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도록 했다(제94조 제1항 단서). 이러한 근로기준법 조항들이 노동자에 대한 주인으로서 군림하도록 이 나라 사용자에게 권한을 부여한 것이라고 법원은 판결해 왔다.

 

나아가 법원은 과반수노조나 근로자과반수의 동의 없이 불리하게 변경한 취업규칙도 무효가 아니고 그 뒤 입사한 노동자에게는 유효하게 적용된다고 판결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자과반수의 동의마저도 실제로는 사용자의 취업규칙변경에 관한 통제장치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계약의 자유는 사업장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사용자의 권한이라고 선언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사업장에서 계약자유는 근로계약의 내용을 정하는 데서 우리법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지금 이 나라 노동자는 근대민사법의 기본원리라는 계약자유조차도 사라진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선언한 준칙을 적용받고 있는 것이다. 사업장의 입법권한까지 사용자는 독점하고서 사업장은 사용자의 일방적인 자유의 공간으로만 존재한다.

 

3. 사실 자본주의국가법질서의 가장 주요한 기치라는 자유는 사업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토록 요란하게 떠들어 대는 자유가 사업장에 이르러서 노동자의 자유로서는 말하지 않는다.

 

자유가 사라진 공간이 노동자가 근로하는 사업장이다. 사업장은 사용자에게 근로해야 하는 공간일 뿐이다. 사용종속관계의 공간, 즉 노동자의 근로를 제공받는 사용자의 지시나 명령에 복종해서 일해야 하는 공간이다(대법원 1984.12.26. 선고 84도2534 판결 등). 사람이 사용자의 지시나 명령에 복종해서 사용자를 위해 자신의 근로를 제공해야 하는 자가 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자유인은 노동자로 되고 사용자에 복종해서 자유를 잃게 된다. 결코 자유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장은 자본의 지배가 관철되는 공간인 것이다. 근대시민혁명에 의해서 근대국가법질서가 세워질 당시 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 소수만 사업장에서 자유가 없었다. 자영농민 등 다수 인민에게 자신의 사업장은 자유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노동자가 절대다수고 그들은 자유가 없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서 자유를 말한다.

 

자유의 세상이라고 자유가 최고의 가치라고 떠들어 댄다. 사업장 밖의 자유를 말한다. 그러나 사업장 밖의 자유는 사업장 밖에서 주인일 수 있는 자에게만 자유일 수 있다. 노동자는 사업장 밖에서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를 맺고서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그 사용종속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취업규칙으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다.

 

 

4. 노동자의 자유가 없기에 그곳이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는 사업장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법은 말하고 있다. 사용종속관계여야 한다고 법원은 선언하고 있다.

 

그러니 근로계약관계를 폐지하지 않는 한 사업장을 자유의 공간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사업장의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에 관한 준칙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건 이것과 다른 문제다.

 

이것은 이 세상의 법질서의 기본원리의 적용문제다.

 

근로조건의 기준이 되는 준칙을 정하는 것은 근로계약관계의 내용을 정하는 것이다.

 

근로자와 사용자는 합의로 계약자유로 정해야 할 사항이다. 이 세상의 법질서의 기본원리가, 계약자유가 개입하는 자유의 영역이다. 근로계약의 내용을 정하는 자유의 문제다. 비록 그 계약의 자유가 노동자를 자유가 박탈되는 사용종속관계의 사업장으로 몰아넣는 것이지만. 그런데 이걸 방치해 왔다. 아니 이 나라에서는 국가권력은 사용자의 권한이라고 법으로 선언했다.

 

그래서 이 나라 노동자는 취업규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채용되고 급여를 지급받고 일하다가 징계받고 인사발령되고 해고당하고 퇴직하게 된다.

 

사업장에선 근로계약도 단체협약도 보이지 않고 취업규칙만 보일 뿐이다. 사용자는 일방적으로 사업장의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에 관한 규정들을 정해 놓고 이걸로 노동자를 복종시켜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조건의 기준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합의해서 계약으로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국가가 법으로 사용자의 권한이라고 정했다고 해서 이걸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이걸 이 나라 노동자는 방치해 왔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조건 관련된 사항에 관해 취업규칙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이걸 이 나라 노동운동은 방치해 왔다. 노조가 조직돼 있어서 단체협약이 존재하는 사업장에서도 근로조건의 대부분은 취업규칙에서 정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노조는 취업규칙을 방조하는 걸 넘어 공모해 왔다.

 

근로조건은 반드시 노조와의 합의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노조가 노동자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이유다. 헌법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단결권을 가진다고 분명히 이것을 규정하고 있다(제33조제1항).

 

단체협약으로 취업규칙의 작성·변경은 노조의 동의나 합의를 통해 하도록 정해야 한다. 그것이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사업장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조가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 노동운동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작성하고 변경하도록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조항들을 폐지하고 사업장에서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은 반드시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를 통해서 정하도록 개정투쟁을 해야 한다.

 

이건 당장 이 나라 노동운동의 목표로 내세우고 투쟁해야 한다. 이미 오래 전에 쟁취했어야 할 목표다. 지금 근로기준법과 판례에 의한 취업규칙에 관한 법리는 노동자에게 자유 박탈의 조건에 대한 합의할 권리도 빼앗아 버린 것이다. 이건 노동자보호를 위한 노동법도 아니고 노동법 이전의 근대민사법질서의 기본원리에도 반하는 것이다.

 

노조 조직률이 10% 미만이고 나머지 절대다수 90%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다. 이 나라의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에 복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취업규칙의 작성·변경 권한의 폐지, 시급하게 이 나라 노동운동이 수행해야 하는 과거의 일이다.

 

사업장을 자유의 공간으로 쟁취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업장 밖의 자유를 자유일 수 있게 하는 이미 낡은 자유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를 위해 시급히 쟁취해야 할 자유다.

 

 

 

출처 : http://cafe.daum.net/sh-minju/11Hd/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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