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산재법 시행규칙 법규로서의 효력은 없어”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산재법시행규칙 제39조를 인용하고 있다. 이 기준은 업무상 과로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평상시 업무량에 비하여 30%이상 증가되었거나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 업무량의 증가, 책임의 증가 등이 있는 경우 등을 제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업무상 과로는 당사자의 건강상태, 업무상 책임의 과중,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등 특정 업무적인 환경이나 개별적인 요인에 의하여 달리 평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시행규칙을 적용하여 불승인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법원은 업무상 과로를 판단함에 있어 시행규칙은 단지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처리기준에 불과할 뿐이지 법원을 구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에 얽매이지 않고 개별적 사안별 특이점을 고려하여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본 판례는 시행규칙상 진폐에 해당되지는 않으나 업무상 유발가능성이 있으므로 규칙에서 정한 바에 관계없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사례입니다.
서울행정법원
사건 : 2003구단7142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원고 : 최○○
피고 : 근로복지공단
변론종결 : 2004. 7. 13.
판결선고 : 2004. 9. 14.
주문
1. 피고가 2003. 6. 30. 원고에 대하여 한 요양승인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는 1978. 6.부터 2002. 4.까지 사이에 약 1년간의 휴직기간을 제외한 22년 동안 동합금 주조업체에서 근무하여 왔는데, 그 중 1987. 9.∼1988. 3., 1994. 2.∼1988. 3., 2001. 7.∼2002. 4.의 기간 동안에 위와 같은 업종의 주식회사 ○○공장에서 근무하면서 주조작업을 하여 왔다.
나. 원고는 위 회사에 근무하던 2001. 8. 10. 교통사고를 당하여 비골골절상 등을 입고 치료를 받다가, 심한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 흉부 고해상전산화단층촬영을 한 결과 폐섬유증 소견이 발견되었고, 같은 해 11. 1. 순천향대학교부속부천병원에서 폐조직 검사를 실시한 결과“거대세포 간질성폐렴, 중금속 진폐증(hard metal pneumoconiosis, 폐섬유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 이에 원고는 2002. 7. 5. 피고에게 위 상병에 대한 요양승인신청을 하였는데, 피고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심의를 의뢰한 결과 위 연구원에서 원고의 폐조직 소견은 간질성 폐질환(만성 간질성 폐섬유화증)으로 봄이 적절하고 작업중 노출된 중금속 분진에 의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보내 오자, 이에 따라 2003. 2. 5. 원고의 위 상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 요양승인결정을 하고 이를 원고와 위 회사에 각 통지하였다.
라. 그런데 피고는 2003. 2. 21. 원고의 간질성 폐질환은 넓은 범위의 진폐증에 포함되므로 원고의 신청은 진폐요양승인신청으로 처리하여야 함에도 일반 요양승인신청으로 잘못 처리하였다고 하면서 진폐요양승인 처리절차를 다시 밟기로 한 다음, 2003. 4. 7. 원고에게 진폐심사협의회의 심의결과 심폐기능이 무장해로 판정되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2003. 7. 1. 개정되기 전의 것) 제57조 관련 별표 5에 따른 진폐증 장해등급이나 요양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통지를 하였다.
마. 원고는 그 후 순천향대학교부속부천병원에서 원고의 상병은 분진에 의한 진폐증이 아니라 중금속 중독 등에 기인한“만성 간질성폐렴”이라는 진단서를 발급받아 2003. 6. 14. 다시 피고에게 상병명을 만성 간질성폐렴으로 하여 요양승인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이미 불승인한 건이라는 이유로 2003. 6. 20. 위 신청을 반려하는 처분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인정사실
(1)주식회사 ○○공장에서는 구리, 아연, 니켈, 망간, 납을 원재료로 한 동합금(황동, 단동, 백동 등) 관과 선을 제조하고 작업공정은 원재료 용해→압출→신선(伸線, 인발)→열처리→산세척→검사→포장 순으로 진행되는데, 원고가 담당한 작업은 용해로와 주조로 작업으로서 도가니에 파쇄된 동관 및 선 폐기물(scrap)을 삽으로 투입한 후 동이 녹기 시작하여 액상으로 될 때 동합금원료(아연, 니켈, 망간, 납)를 투입하고 용해온도가 1천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도가니 상방에 설치된 집진기를 가동하면서 중탕로에 출탕하여 주조로로 합금물을 투입하는바, 이때 집진기를 가동하여도 연기와 분진이 많이 발생한다.
(2)원고는 오래 전에 하루 1갑 정도 담배를 피웠으나, 1994. 이후 금연하고 있고, 결핵이나 천식을 앓은 일이 없다.
(3)미만성(diffuse) 간질성 폐질환은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폐간질(폐포벽 내면에서 시작하여 폐포상피, 폐간질조직, 모세혈관 내피까지의 간질조직) 등 결합조직에 발생하는 염증성 질환으로 복잡적이거나 알지 못하는 원인에 의하여 폐간질, 폐포, 세기관지, 폐실질 및 폐혈관 등이 침범되어 폐가 경화되면서 제한성 폐기능장애가 나타나고 폐포-모세혈관의 산소섭취 및 확산능력이 저하되는 질환인데, 그 원인으로는 무기분진, 유기분진, 가스, 흄, 에어로졸, 약물, 감염, 방사선 등이 거론되나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전체사례의 3분의 2 정도에 이른다고 하고, 한편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코발트, 텅스텐 등 중금속이 거대세포 간질성 폐렴의 원인물질임이 알려졌으며, 영국에서의 연구에 의하면 간질성 폐렴의 하나인 특발성 폐섬유화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 폐의 간질에 원인불명의 염증성 변화가 일어나서 간질이 섬유화되어 가스교환 기능이 극단적으로 저하되는 상태로 진행되는 것으로, 폐가 축소되어 굳어지고 폐활량도 두드러지게 감소되는 한편 폐의 확장능력도 저하되고 동맥혈 속의 산소가 부적하여 저산소혈증이 일어난다) 환자의 10∼13%가 철강, 황동, 납 등의 금속분진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4)순천향대학교부속부천병원에서는 원고의 폐기능은 폐 확산능력이 50%로 일상생활에 심한 장애가 있는 상태라고 진단하면서, 간질성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구리, 아연, 납, 코발트가 있는데 원고가 오랫동안 용해 및 주조작업을 하면서 이러한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위 질환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감정의견을 밝혔다.
나. 판단
먼저 원고가 2002. 7. 5.과 2003. 6. 14. 요양승인신청을 한 간질성폐렴이 반드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규칙 제45조 소정의 진폐증에 해당 또는 포함되는 것이라고 단정할 의학적 근거는 없다.
또한 진폐증에 대한 요양승인절차, 요양기준 및 장해등급 판정기준 등을 특별히 정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45조 내지 제59조는 진폐증의 특이성, 복잡성을 감안하여 업무처리상의 편의와 통일성을 기할 필요에서 정한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에 불과하여 법규로서의 효력은 없는 것이고, 나아가 진폐증의 범주에 속하는 질병이 위 규정 소정의 요양기준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는 한 그로 인한 근로자의 건강상태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정한 요양 등 보험급여를 받을 필요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따로 살펴 요양승인 여부를 결정하여야 할 것인 바, 원고의 간질성폐렴이 위 규칙 소정의 진폐증과 성격 및 발병원인이 유사하거나 그 범주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는 여러 종류의 중금속 분진에 노출되어 간질성폐렴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업무환경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하여 왔던 반면 기존질병이나 이 사건 상병의 발병원인으로 특별히 의심될 만한 업무외적 요인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 이상, 그와 같은 업무환경적 요소가 간질성폐렴을 발생시킨 것으로 능히 추단할 수 있고, 그로 인한 건강상태에 비추어 요양 등 보험급여를 받아야 할 필요성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고는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간질성폐렴으로 인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보험급여를 받을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것인데, 그럼에도 피고가 진폐증에 관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상의 요양기준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원고의 요양승인신청을 배척하고 말았으니 이 사건 처분은 위법을 면할 수 없다.
3. 결론
따라서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