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의 악화와 과로 스트레스는 의학적 인과관계가 있다.

이번 판례는 본 노무사가 대법원 홈페이지 "법원에 바란다"에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드리는 글"이란 제목으로 게재한 "간질환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어야 한다"(2006. 3. 10.)는 주장이 있은 뒤 새로이 내려진 판결이다.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도 승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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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 질환인 간염을 악화시켜 간암을 유발하게 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공무상 사망에 해당한다

☞ 공포 : 2007-1-24 2006구합18072

☞ 사건이름 : 유족보상금부지급결정처분취소

☞ 원심판결 :  

 

 

판시사항  

 

 

재판요지

 

김○○이 외교통상부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가 김○○의 기존 질환인 간염을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켜 간암을 유발하게 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함이 상당하다.

 

 

당사자

 

【원 고】 김○○

【피 고】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변론종결】 2007. 1. 18.

 

 

주문  

 

1. 피고가 2006. 4. 13. 원고에 대하여 한 유족보상금 부지급 결정처분을 취소한다.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청 구 취 지】

주문과 같다.

 

 

이유  

 

1. 처분의 경위

 

가. 원고의 남편인 김○○은 1993. 5. 24. 외무관에 임용되어 외교통상부에 근무하던 중 2005. 1.경 간암판정을 받고 간절제술을 받는 등 치료와 근무를 병행하다가 2005. 7. 26. 23.:40경 일산국립암센터에서 간세포암으로 사망하였다.

 

나. 원고는 피고에게 김○○의 사망이 공무상 사망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족보상금 지급청구를 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는 2006. 4. 13. 김○○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1호증, 갑2호증의 각 기재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김○○은 외교통상부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별업무와 초과근무 등 통상적인 수준을 초과한 업무를 3년간의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수행하면서 현실적, 물리적으로 도저히 건강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어려운 환경에서 업무수행을 하면서 과로 및 스트레스로 인하여 간암이 발병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므로 김○○의 사망은 공무수행에 기인한 것으로 공무상 사망에 해당한다 할 것임에도 이와 달리 보고 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나. 인정사실

 

(1) 김○○의 근무관계 및 업무내용

(가) 김○○은 1993. 5. 24. 외무관에 임용된 이후 외교통상부 외교정책기획실 정보과(1993. 5.-1994. 8.)를 시작으로 구주국 서구2과(1994. 8.-1995. 7.), 미국 델라웨어대 파견 근무(1995. 7.-1997. 5.), 기획관리실 행정법무담당관실(1997. 5.-1998. 5.), 외교정책실 인권사회과(1998. 5.-1999. 12.), 주네덜란드 대사관(1999. 12.-2002. 7.), 주터키 대사관(2002. 7.--2004. 8.), 구주국 구주2과(2004. 8.-2005. 4.) 등 여러 보직을 거친 후, 2004. 4. 15.부터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외교안보연구원 외국어교육과에 재직하였다.

(나) 김○○은 2002. 7.부터 2004. 8.까지 주터키 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주터키 대사관의 경제?통상, 문화?홍보, 영사 등의 일상 업무를 수행하는 외에 에드로안 터키 총리의 2004. 2. 방한과 관련하여, 2004. 1. 내내 터키 총리의 방한 일정 조정을 위하여 터키 외교부 인사를 수시로 접촉하고, 방한에 따른 성과 제고를 위하여 경제?통상?문화 분야의 관련 아이템 발굴 및 이를 위한 사전 교섭, 방한 행사 관련 자료 작성, 행사 후속 조치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그 외에도 국립극장의 터키 공연(2003. 6. 9.), 외교통상부 장관의 터키 방문(2004. 4. 18.-4. 21.) 준비, 국제교류재단 해외공연팀의 터키 공연(2004. 5. 1.-5. 4.) 주관 및 OECD 중소기업장관회의(2004. 6. 3.-6. 5.)에 정부대표로 참석하였다. 외교통상부는 우리나라 재외공관이 위치한 해외 각국의 근무환경 수준을 자체적으로 1등급 내지 4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터키는 3등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근무환경이 열악한 편인데, 김○○은 근무환경 및 의료환경이 좋지 않은 터키에서 2년간 근무하는 동안 계속되는 초과근무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긴장을 요하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다) 김○○은 2004. 8. 25. 귀국한 후 외교통상부 구주국 구주2과에 출근하여 과 차석으로서 담당국가인 영국, 아일랜드, 체코, 슬로바키아와의 외교관계 실무업무를 수행하였다. 과 차석은 과장을 보좌하면서 구주2과의 업무를 총괄하여야 하는 책임이 부여되어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데다가 당시 구주2과 실무 직원 중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을 신규로 담당한 동료 및 후배 직원들의 일상 업무도 모두 챙겨야만 했다.

(라) 한편, 구주2과 근무기간 중 국무총리 유럽 3개국 방문(2004. 10. 13.-10. 20.)과 대통령 유럽 3개국 방문(2004. 11. 30.-12. 9.)과 같은 국가적 행사가 있어 그 준비 및 진행을 담당하게 되었는바, 통상적으로 국무총리급 및 대통령급 순방 행사 준비를 위해서는 2-3개월 전부터 방문국가와의 일정 교섭, 회담의제 설정, 방문국가별 정치?경제?문화 등에 관한 기본자료, 순방국가의 의전행사별 자료 준비, 방문성과 제고를 위한 내부의 전략회의 수시 개최, 장관에 대한 중간보고, 순방 관련 보도자료 작성 등 다양하고 방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바, 그에 따라 김○○은 터키에서 귀국하자마자 거의 매일 야근 및 휴일근무를 하면서 통상의 외교행사에 비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겪었다.

(마) 이해찬 국무총리의 진보정상회의 참석 및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 방문과 관련하여, 김○○은 2004. 9.초부터 총 5차례에 걸쳐 방문준비 현황을 보고하고, 국별 행사자료, 진보정상회의 참가자료, 언론 홍보자료를 준비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럽 3개국 방문과 관련하여, 김○○은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필요한 기본자료, 정상회담 자료, 주요 현안자료, 준비상황 보고자료 등을 작성하였다.

(바) 김○○은 진보정상회의의 참석을 위한 8일간의 현지 출장기간 및 대통령의 영국, 폴란드 방문시 실무수행원으로 참가하기 위한 10일간의 현지 출장기간 동안에는 호텔에 CP를 운영하면서 회담자료 보충, 추가자료 준비 및 비상상황에 대비하였는데, 다양한 행사를 적절하게 진행하고 돌발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하여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공무를 수행하였고 순방기간 내내 행사가 끝날 때마다 결과보고서를 작성하여 국내에 보고하고 그 다음날 일정 준비를 하기 위하여 하루 2-3시간 정도의 수면밖에 취하지 못하여 극심한 피로가 누적되었으며, 귀국 후에도 국무회의 보고자료 등 후속조치를 진행하였다.

 

(2) 김○○의 건강상태 및 사망경위

(가) 김○○은 1965. 12. 19.생으로 1993.경 만성 B형 간염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은 이후 금연, 금주 및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한편, 주네덜란드 대사관 근무시기인 2002.까지 1년에 한번 이상 초음파검사 등 정기검진을 받았으나, 주터키 대사관 근무 이후로는 열악한 의료환경 또는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하여 적절한 검진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였고, 주터키 대사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국무총리 유럽 3개국 방문 및 대통령 유럽 3개국 방문 행사 준비를 맡게 되어 건강검진을 받을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하였다.

(나) 김○○은 2005. 1.초부터 오른쪽 상복부에 심한 근육통을 느껴 같은 달 13. 새벽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여 검진한 결과 ‘간세포 암종 악성 신생물’로 판명되어 치료를 받다가 같은 달 18. 서울아산병원으로 전원하여 같은 달 26. 위 병원에서 간절제술을 시술받은 후 같은 해 2. 8.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받던 중 증세가 악화되어 2005. 7. 2.부터 같은 달 22.까지 국립암센터에 다시 입원하여 치료받았으나 같은 달 26. 23.:40경 사망하였다.

 

(3) 관련 의학 지식

(가) 간염 : 급성 간염은 감염 후 대개 3-4개월이면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 보통이나 이와는 달리 간염이 낫지 않고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만성간염이라 한다. 만성간염의 원인으로는 간염을 일으키는 간염바이러스(이중 B형, C형, D형이 만성간염의 원인바이러스)가 대표적이며 그 외 자가면역성, 약물, 대사질환, 원인불명 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가 간염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며, 이 중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감염 후 급성 간염으로 끝나지 않고 만성으로 이행되는데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시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예를 들어 면역체계가 완성된 성인에게 감염된 경우에는 대개가 급성간염으로 끝나고 1-5%만이 만성화되는 반면, 신생아 시기에 걸리면 90% 이상이 만성화하며 소아 때 걸리면 30% 이상이 만성화한다. 따라서 수직감염(어머니로부터 출생시 혈액을 통하여 전염)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경우 성인이 되어 만성간염으로 나타나는 예가 대부분이다.

(나) 간세포암 : 원인인자가 분명한 대표적인 악성 종양으로 전세계적으로 B형 및 C형 바이러스 및 Aflatoxin-B1 같은 화학물질의 오염과 역학적으로 밀접한 인과관계를 나타내고 특히 B형 및 C형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한 경우는 바이러스적 요인뿐만 아니라 간염-간경변증 요인이 함께 관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간세포암종의 약 70%가 B형 간염과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인정근거] 갑1호증, 갑3호증 내지 갑6호증, 갑7호증의 1 내지 4, 갑8호증, 갑9호증의 1, 2, 갑10호증, 갑11호증의 1 내지 5, 갑12호증의 1, 2, 갑13호증 내지 갑15호증, 갑16호증의 1 내지 11, 갑17호증의 1 내지 3, 갑19호증의 1 내지 31, 갑20호증의 1 내지 13, 갑21호증의 1 내지 22, 갑22호증의 1 내지 35, 갑23호증의 1 내지 17, 갑24호증의 1 내지 20, 갑25호증의 1 내지 5, 을1호증의 1, 2, 을2호증, 을3호증의 1, 2의 각 기재, 증인 신은범, 강대수, 이영석의 각 증언, 변론 전체의 취지

 

다.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검토

 

(1) 개요

업무상 재해로서의 간질환은 크게 사고성 간질환, 직업상 간질환, 기존 간질환의 악화로 구분할 수 있다. 발생원인 및 임상경과가 뚜렷하고 진단이 용이한 사고성 간질환 및 직업상 간질환과는 달리 기존 간질환의 악화는 업무 관련 요인과 개인적 요인이 서로 중첩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 인정할 경우 그 인정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업무와 관련한 과로 또는 스트레스가 기존 간질환의 악화와 인과관계가 있는지의 여부는 업무상 재해의 인정 여부에 있어서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쟁점에 관한 대법원 판례는 2002. 10. 25. 선고 2002두5566 판결을 기점으로 하여 종전과는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이 사건 판단의 대전제로서 이러한 판례 흐름 변화의 내용과 그러한 변화를 초래하게 된 계기,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 사이의 인과관계 판단의 타당성 등에 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대법원 판례의 동향

(가) 종전의 대법원 판례

“현대의학상 과로와 영양부족은 B형 간염이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는 주된 원인으로 밝혀져 있다.”(대법원 1988. 2. 23. 선고 87누81 판결), “원심이 채택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장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의하니, 과로와 스트레스는 B형 간염 또는 간경변, 간암이 발생원인의 일부로 가능성이 제시되고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과로 및 스트레스가 발생원인이 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B형 간염이 간경변, 간암으로 이행할 수는 있지만 B형 간염에 걸린 모든 사람이 간경변, 간암으로 이행되는 것은 아니며, B형 간염이 있는 상태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는 간경변, 간암으로 악화되는 것을 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과로나 스트레스가 간경변 또는 간암의 독립한 발생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B형 간염을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악화시키는 인자에 해당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대법원 1998. 12. 8. 선고 98두12642 판결), “원심이 채용한 대한의사협회장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바인 과로와 스트레스가 간염의 경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는 점을 함께 고려할 때”(대법원 2000. 9. 22. 선고 2000두3627 판결), “사실관계와 만성 간염이나 간암 환자의 상당수가 과로나 스트레스에 의하여 간기능이 악화되는 경우를 흔히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할 때, 망인의 업무내용이 보통 평균인에게는 과중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만성 B형 간염에 걸린 망인과 신체조건으로 보아서는 쉽사리 피로를 느낄 수 있고, 이러한 피로가 누적되고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음에 따라 만성간염이 일반적인 자연속도 이상으로 급속히 악화되어 간암으로 이어져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2두349 판결)고 판시하는 등 종전의 대법원 판례는 대부분 과로와 스트레스가 간염의 경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조회, 감정촉탁 등을 근거로 한 사실인정 및 과로나 스트레스가 간질환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전제한 기존의 판례를 인용하여 업무의 성격, 내용, 업무량 등을 기준으로 과로 및 스트레스의 정도를 판단한 후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두5566 판결 이후의 판례

대법원은 2002. 10. 25. 선고 2002두5566 판결에서, “원심의 사실인정 자체에 의하더라도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은 과로나 스트레스가 없어도 악화될 수 있고 임상적으로는 과로나 스트레스 없이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며, 기록에 의하더라도 과로나 스트레스 자체가 간질환의 발생이나 악화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므로, 결국 현재의 의학적 소견은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간질환이 발생되거나 악화된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인바, 사정이 그러하다면, 원심으로서는 그러한 의학적 소견과 다르게 인과관계를 추단하기 위하여는 망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기존 질환인 만성 B형 간염이 정상적인 경우보다 더 악화되었다는 점에 관한 자료가 있어야 할 터인데, 기록을 살펴보아도 그에 관한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고 판시한 이래, “원심은 망인이 사망 당시까지 치료를 받은 서울삼성병원에 대한 사실조회결과를 기초로 과로와 스트레스가 B형 간염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는 있다고 하였으나, 삼성서울병원장은 이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데 비하여, 서울대학교병원장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와 대한간학회의 '간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은 다수의 임상적 실험결과와 의학적 연구결과를 기초로 하여 과로와 스트레스가 B형 간염, 간경변 및 간세포암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다는 의학적ㆍ과학적 증거는 없다는 것이고, 나아가 서울대학교병원장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의하면, 원심이 확정한 바와 같은 망인에게 있어서 B형 간염에서 간경변과 간세포암까지의 진행경과가 B형 간염의 자연적인 진행경과라고 하고 있을 뿐이며, 달리 망인에게 있어서 B형 간염에서 간경변과 간세포암까지의 진행경과가 B형 간염의 자연적인 진행경과와 다른 진행경과를 거쳤다거나 B형 간염의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라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두14441 판결)고 판시하는 등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만성 B형 간염의 자연적인 진행경과와 다른 진행경과를 거쳤다거나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라고 볼만한 예외적인 자료가 없는 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간질환이 발생되거나 악화된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

(다) 이와 같이 종전의 대법원 판례의 입장과는 달리 2002두5566 판결 이후 업무상의 과로 또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간질환이 발생 또는 악화되었다는 원고의 주장이 인용된 대법원 판례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바, 이러한 대법원 판례의 태도 변화에는 위 2004두14441 판결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근로복지공단의 용역의뢰에 따라 대한간학회에서 2001. 12. 발표한 “간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하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라 한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하에서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의 작성경위, 내용, 문제점 및 의미 등을 살펴본다.

 

(3)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의 내용 및 문제점 검토

(가) 작성 경위

대한간학회는 2001.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간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마련’에 관한 연구용역을 의뢰받아 당시 위 학회의 총무였던 이영석 교수를 포함한 대한간학회 회원 8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였는데, 근로복지공단이 제공한 만성 B형 간염에 관한 판례상의 승, 패율에 대한 연도별 통계자료 및 나머지 7명의 교수들이 제공한 기초 자료를 토대로 이영석 교수가 2-3개월에 걸쳐 대표집필자로서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를 주로 작성하였다.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그 이후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발생 또는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의 존부에 관한 대한간학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채택되었다.

(나) 내용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우리나라 판례에 대한 의학적 견해’라는 소제목 하에서 “과로나 스트레스가 간질환을 유발시키거나 악화시킨다는 의학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의학적 측면에서 기존 간질환이 악화되는 것은 과로나 스트레스 자체보다 부적절한 건강관리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과로사라는 용어의 적용범위를 임의로 확대 해석하여 간질환이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함에 따라 판결 자체에 대한 공정성이나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고, 이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바이러스성 간염은 전염경로나 진단방법이 뚜렷하여 인과관계를 결정하기가 용이하다.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의 경우를 의학적, 자연과학적 이외의 방법으로 추론함에 따라 오류가 발생되고 있다.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질병의 범위를 임의적으로 바이러스성 간염까지 확대하여 해석함으로써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간암 등이 자연경과속도보다 빨리 발생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기존질병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환자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객관성이 보장되는데, 자신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체크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간암이 발생된 경우에는 자연경과속도보다 빨리 간암이 발생된 것으로 오인할 수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위와 같은 결론의 근거로서, ‘육체적 활동량이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소제목 하에, ① 1947. 3.부터 1949. 10.까지 독일에 주둔한 미군 병사와 군속 중 간염을 지닌 3,614명에 대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회복기 초기에 육체적 활동량이 현저하게 많았던 경우에도 임상경과가 나빠진 경우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육체적 활동량이 간염의 자연경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전향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육체적 활동량을 2주일 동안 점진적으로 증가시킨 A군 38명, 안정가료를 취한 B군 33명, 과격한 운동을 허용한 C군 27명에 대하여 간염의 지속기간을 조사하였으나 A군, B군, C군 간에 차이가 없었고, A군, B군, C군에 관계없이 혈중 빌리루빈이 3㎎ 이상인 경우에 간염의 지속기간이 길었다고 보고한 연구자료, ②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배속된 한국인 중 간염을 지닌 460명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안정가료를 취한 그룹과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허용한 그룹으로 나눈 뒤 임상경과를 조사하고 10년 후에 장기적인 자연경과를 조사한 연구에서도 두 그룹 간 차이가 없었다고 보고한 연구자료, ③ 베트남전쟁 당시 간염으로 입원한 미군병사 199명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안정가료를 한 그룹과 과격한 육체적 노동(벙커 진지 공사, 목수일, 구보 등)을 실시한 그룹으로 나누어 간염의 지속기간을 조사하였으나 두 그룹 간에 차이가 없었다고 보고한 연구자료, ④ 헬스기구(bicycle ergometer)를 이용하여 육체적 활동량을 정확히 계측한 1980년대의 연구에서 과격한 육체적 활동량이 간염의 자연적인 경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밝혀졌다는 연구자료, ⑤ 육체적 활동량을 5단계로 구분하여 임상 경과를 분석한 연구에서 활동량이 많았던 그룹이 퇴원 후 9.5일 빨리 사회에 복귀하였다고 보고되었다는 연구결과들을 제시하였다.

(다) 문제점 또는 한계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연구목적, 연구방법 및 내용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 또는 한계를 가진 것으로 지적할 수 있다.

(i)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대한간학회가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의 존부에 관하여 학회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한 결과물이 아니라 대표집필자인 이영석 교수가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종래부터 실무 및 소송에 있어서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입장을 고수해 왔던 근로복지공단의 용역의뢰에 응하여 독자적인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지 아니하고 2-3개월이라고 하는 단기간 내에 기존의 문헌연구를 요약 정리한 서머리(summary) 보고서로서 기존의 주장에 부합하는 문헌적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 것에 그칠 뿐이어서 연구목적의 중립성, 객관성이나 그 연구방법의 과학적 엄정성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ii)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에는 육체적 활동이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외국의 연구결과가 적시되어 있으나, 이러한 연구결과는 이영석 교수가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상당한 육체적 활동량과 구분되는, 객관적으로 계량화하기 힘든 업무상 과로에 대한 연구라고 볼 수는 없고, 나아가 업무상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경과나 악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의학적 연구는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분야의 연구가 행하여졌다는 자료 또한 없다.

(iii)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에서 인용한 외국의 연구결과는 만성 간염환자의 경우 상당한 정도의 육체적 활동이 있어도 간염의 지속기간이나 자연경과에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으로서, 간염환자들에 대하여 침상에서 극단적인 안정가료만이 최선이라는 종래의 의료적 입장을 완화시켜 환자들을 일상업무에 복귀시켜 치료를 하여도 무방하다는 측면 또는 목적에서 그 연구의 의의가 있었던 것일 뿐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경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룬 연구라고 볼 수 없다.

(iv)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의 기본 시각은 그 연구보고서가 대한간학회 소속 전문가들만이 참여하였던 결과로 인하여, 간염바이러스의 증식이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두고 수행되었을 뿐 위 학회의 중심적인 연구영역이라고 볼 수 없는 인체의 면역체계 약화 또는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면역체계 약화가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시각에서의 연구는 부족하거나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v)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① ‘업무상 질병의 범위’라는 소제목 하에 제4쪽에서 기존의 간질환도 업무로 인하여 악화된다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7. 5. 28. 선고 97누10 판결)의 설시내용을 오해한 채 그 설시내용을 인용함도 없이 대법원이 업무상 질병만을 기존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판례의 취지를 저자의 의도에 맞추어 잘못 설명하거나, 미국의 OSHA가 언급한 pre-existing condition의 의미를 ‘문맥상 업무상 질병’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불분명하게 설명함으로써 이 연구의 출발에서부터 기존의 질병의 범위에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소인에 따른 질병을 배제하는 것이 옳다는 이 연구의 문제의식의 대전제에 오류가 있음이 발견되고, ② ‘육체적 활동량이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에 미치는 영향’이란 소제목 하에 제37쪽에서 ‘안정가료가 권유되는 간질환의 상태는 1. 혈중 빌리루빈 농도가 증가되는 경우, 2. 프로트롬빈 시간이 3초 이상 지연되는 경우, 3. 증상이 매우 심한 경우, 4. 연령이 40세 이상이며, 황달 등의 증상이 없고 ALT가 계속 100 IU/L 이하로 유지될 때에는 육체적 활동량을 제한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기술하였으나, 대표집필자인 이영석 교수는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안정가료가 요구되는 것은 1-3번까지이고, 육체적 활동량을 제한할 필요가 없는 경우는 ‘연령이 40세 이상이고 황달 증상이 없으며 ALT가 지속되는 경우’이다”라고 증언하였는데, 위 증언대로라면 위 용역연구보고서의 내용과 배치됨은 물론이고 보고서 문맥의 전후가 상응하지 않는 결과에 이르게 되며, ③ ‘간질환과 관련된 외국의 판례’로서 제45쪽 내지 제57쪽에 소개된 미국, 일본 및 호주의 판례들은 과로 및 스트레스와 간질환 간의 인과관계를 쟁점으로 다룬 판례가 아니어서 미국, 일본 및 호주의 판례가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참고할 가치가 있는 판례라고 볼 수 없고(이영석 교수 역시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가 그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의식과는 무관한 판례들을 보고서에 다수 수록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이 있는데다가, ④ 이 사건 연구용역보고서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거의 유일한 자료로서 이 보고서의 핵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 외국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부분인 제37쪽에서는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외국 연구결과의 내용과 각주의 인용문헌이 상호 일치하지 않는데 이를 그대로 간과한 오류가 있는 등,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짧은 작성기간에 따른 시간의 제약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내용 및 형식에 있어서 학술논문이 갖추어야 할 엄정함과 완결성이 결여된 부분이 왕왕 발견된다.

(vi)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의 작성에는 내과전문의들만이 참여하였을 뿐 면역학, 역학, 직무스트레스의학, 산업의학 및 신경정신의학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았고, 육체적 활동이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외국의 연구결과 및 국내외 판례를 단기간에 요약, 정리한 보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어 장기간에 걸친 인체 및 동물에 관한 임상실험을 기초로 한 의학 학술논문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

(라) 의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에서 결론의 도출근거로 제시한 외국의 연구들은 업무상 과로와 간질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만성 간염환자의 경우 육체적 활동을 제한하고 안정가료를 권장했던 기존의 의학적 견해와 달리 일상적인 육체적 활동의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이것이 육체적 과로가 간질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즉 이들 외국 연구는 적당한 육체적 활동이 간질환을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연구일 뿐 육체적 과로와 간질환의 악화 사이에 관련이 없음을 증명한 연구가 아닐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스트레스와 간질환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연구용역 의뢰에 응하였다면 기존에 그 분야에 관한 연구가 없음에 즉응하여, 육체적 과로와 스트레스가 간질환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관하여 적극적인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그런 연구 없이 이 부분 쟁점과는 직접 관련도 없는 기존의 외국 연구결과의 의미를 확대해석하여 육체적 과로는 물론이고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악화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고자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연구논문이 아니라 현재까지 의학계에서 육체적 과로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거나 또는 연관성이 없다고 제시한 신뢰성 있는 보고는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범위 내에서 그 의미를 가진 보고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간질환의 개요 및 업무연관성에 관한 제한적인 의미를 가진 연구라 할 것이므로 위 용역연구보고서의 결론은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 사이의 인과관계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직접적으로 인용될 만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 보고서로 평가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를 발표한 대한간학회는 현재까지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연구실적이 없었고, 과로 및 스트레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회가 아닌데다가 이영석 교수가 이 법정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간질환의 특성상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B형 간염 바이러스의 관련성에 관하여 더 이상 연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발생 또는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의 유무에 관한 과학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간질환 전문가뿐만 아니라 면역학, 역학, 직무스트레스의학, 산업의학 및 신경정신의학 전문가들, 나아가 법학 및 심리학 등 관계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인체 및 동물에 관한 전향적인 환자대조군 임상실험을 기초로 한 학제적 연구가 조속히 시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4) 인과관계의 유무에 관한 이 법원의 판단

(가) 스트레스와 면역 약화와의 인과관계

면역체계는 골수와 흉선에서 발달한 백혈구에서 파생되어 인체의 외부에서 침입하는 유해한 이물질 즉,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혹은 기생체를 발견하고 제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면역기능은 기본적으로 면역 유전자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외상이나 방사선, 영양부족, 약물사용, 온도, 나이 등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스트레스와 심리적 요인이 면역체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중추신경계, 자율신경계, 내분비과정을 개관해 보면 다음과 같다. 스트레스의 특성이 어떤가에 따라 유기체는 뇌의 번연계에서 정서적 정보를 시상하부에 전달한다. 시상하부는 신경분비세포에서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방출요인이라는 펩타이드를 분비한다. 이것은 다시 뇌하수체와 다른 뇌의 영역을 따라 이동된다. 뇌하수체는 ACTH라는 부신피질자극 호르몬을 방출시키며, 시상하부의 뉴런은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계의 활동도 증가시킨다. ACTH는 부신피질로부터 코티코스테로이드를 방출시키게 하여 곤란상황을 증폭시킨다. 영장류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장 흔하게 분비시키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코티솔(혹은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이다. 한편, 자극받은 교감신경 뉴런은 부신수질을 자극시키고 카테콜라민을 분비시킨다. 카테콜라민은 긴급사태에서 “투쟁-도피(fight-flight)”의 반응을 민첩히 하도록 하며 에피네프린과 노어에프네프린이라는 호르몬으로 분비된다. 이 밖에 다른 부가적 호르몬(도파민 등)도 대뇌 카테콜라민계에 의하여 방출된다.

다음으로, 스트레스 수준의 증가와 그에 따른 코티솔과 교감신경계 활동의 증가는 바이러스 침입에 따르는 면역체계의 활성화를 억제시킨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 의하여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면 Glaser 등은 의대생들에 대한 B형 간염백신의 항체반응 연구에서 스트레스가 크지 않은 학생들에게서 강한 항체반응이 나타났다는 결과를 보고하였고, 치매환자를 돌보는 스트레스군과 비스트레스군 간에 독감 백신에 대한 면역반응에 대한 연구에서도 스트레스군에서 항체 생성률 및 바이러스에 특이적인 T림프구(면역세포)의 반응이 대조군에 비하여 떨어진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또한 동물 모델에서 반복적으로 속박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에 반응하여 항체의 생산이 변화되고 T세포의 활성화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Hilakivi-Clarke 등은 TGF alpha를 생산하는 유전자를 과발현시켜 자연적으로 간암이 발생하도록 조작한 쥐를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에 있는 군과 그렇지 않은 군을 비교한 실험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쥐들에 있어서 암에 대한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NK-T세포의 활동도가 떨어지고 간암의 발생률과 진행속도 및 침범범위가 모두 증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Wu, W의 연구에서는 쥐의 대장암세포가 사회적 스트레스를 받은 군에서 대장암 세포에 대한 면역 저하로 인한 간전이가 더 증가되었으며, 항암치료에 대한 반응률도 더 낮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스트레스가 활동적 바이러스나 백신의 침입에 대한 면역계의 방어능력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의 대표집필자인 이영석 교수 역시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인체의 면역체계를 교란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로 인정된다.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 있는 자연살해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면역체계의 일부를 교란시켜서 면역력을 떨어지게 한다. 과로는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고 증언함으로써 스트레스 또는 과로가 인체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나) 면역 약화와 간질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의 기재내용 및 증인 이영석의 증언에 의하면, “만성 B형 간염환자들은 자신의 면역체계만으로는 간염 바이러스를 밀어내지 못하여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계속 증식하는 상태에 있다. 만성 간염이 지속되는 동안 간세포의 손상과 재생 과정이 거듭되며 그 정도는 만성간염을 일으킨 원인에 따라, 환자 자신의 면역체계에 따라 달라지고 있으나, 만성간염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됨에 따라 간세포 숫자는 점차 감소되고 염증반응의 부산물인 섬유성 물질이 계속 축적되어 간조직은 점점 단단하게 굳어지고 있다. 면역체계가 약해지면 간염바이러스가 증식될 가능성이 높아져 면역체계가 성숙한 40대 이상인 경우 간세포가 파괴될 가능성이나 속도가 빨라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이 법원의 대한산업의학회에 대한 사실조회결과에 의하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제시한 보고는 없지만 간질환의 대부분이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면역반응의 결과이며 정신적 스트레스가 면역체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간질환의 악화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관여할 수 있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된다.

따라서 적어도 인체의 면역체계가 충분히 성숙하였다고 보이는 일정한 연령대, 예컨대 40대 이상의 간질환 환자에 있어서 어떠한 요인으로 인하여 인체의 면역력이 약화되면, 간염바이러스가 증식될 가능성이 증가하고 그로 인하여 간세포가 파괴됨으로써 간질환이 자연경과속도 이상으로 악화될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 스트레스 또는 과로와 간질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 재해가 되기 위해서는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지만,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 과로 등이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도 그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하며, 평소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입증이 있는 경우에 포함되는 것이고,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7. 27. 선고 2000두4538 판결 등 참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과도한 스트레스(또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동반한 과로)는 면역체계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고, 인체의 면역력이 약화되면 간염바이러스가 증식될 가능성이 증가하며 그로 인하여 기존 간질환을 자연경과속도 이상으로 악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추단해 볼 수 있다. 다만, 이영석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만성 B형 간염환자는 이미 항체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점, 40대 미만의 환자에서는 간염 바이러스의 양이 많아져도 간세포의 파괴속도가 빨라지지 않을 수도 있는 점, 스트레스가 동반되지 않는 육체적 과로와 면역체계의 약화 간의 상관관계는 아직 밝혀졌다고 볼 수 없는 점, 스트레스에 의하여 일정 정도까지의 간 손상이 있다 하더라도 간은 재생이 가능하므로 일시적인 급성 스트레스가 간질환을 중대하게 악화시킨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모든 간질환 환자에 있어서 스트레스 상황이 간질환을 악화시킨다는 것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으며, 일정한 연령대 예컨대 40대 이상의 간질환 환자에게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는 과도한 스트레스(또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동반한 과로)가 상당 기간 지속되어 기존 간질환을 자연적인 진행경과와 다른 진행경과를 거치게 할 정도로 중대하게 악화시켰거나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켰다고 추단될 수 있는 경우에만 스트레스 또는 과로와 기존 간질환의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이와 같이 사안에 따라 과도한 스트레스 또는 과로와 간질환의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이 법원의 판단이 최근의 대법원 판례의 판시내용에 반한다고는 볼 수 없다. 즉 2002두5566 판결 이후의 대법원 판례의 기본 입장은 어디까지나 당해 기록상 대한간학회의 '간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혹은 그에 근거한 대학병원장에 대한 사실조회에 터잡아 현재의 의학적 소견은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간질환이 발생되거나 악화된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는바, 대한간학회의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연구논문이 아님은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으므로, 만일 기록상 예외적으로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만성 B형 간염의 자연적인 진행경과와 다른 진행경과를 거쳤다거나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것이라고 볼만한 근거자료가 있다면 그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5) 소결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현재까지 육체적 과로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거나 혹은 연관성이 없다고 제시한 신뢰성 있는 보고는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에서 결론의 도출근거로 제시한 외국의 연구들은 업무상 과로와 간질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만성 간염환자의 경우 육체적 활동을 제한하고 안정가료를 권장했던 기존의 의학적 견해와 달리 일상적인 육체적 활동의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이것이 육체적 과로가 간질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즉 적당한 육체적 활동이 간질환을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연구일 뿐 육체적 과로와 간질환의 악화 사이에 관련이 없음을 증명한 연구라고 할 수 없다.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과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연구논문이 아니라 현재까지 의학계에서 육체적 과로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거나 또는 연관성이 없다고 제시한 신뢰성 있는 보고는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보고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용역연구보고서의 결론은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 사이의 인과관계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직접적으로 인용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인다.

과로 또는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와 직접적인 연관성 있다고 제시한 보고는 없다 하더라도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두5566 판결 및 대법원 2001. 7. 27. 선고 2000두4538 판결의 판시내용을 종합해 볼 때,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 기록상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과로 또는 스트레스와 간질환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합리적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즉, 과도한 스트레스(또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동반한 과로)는 면역체계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 및 인체의 면역력이 약화되면 간염바이러스가 증식될 가능성이 증가하며 그로 인하여 일정한 연령대 예컨대 40대 이상인 경우에는 간세포가 파괴될 가능성이나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의학계에서 인정되고 있는 견해이다. 따라서 모든 간질환 환자에 있어서 스트레스 상황이 간질환을 악화시킨다는 것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면역체계가 성숙한 일정한 연령대 예컨대 40대 이상의 간질환 환자에게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는 과도한 스트레스(또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동반한 과로)가 상당 기간 지속되어 기존 간질환을 자연적인 진행경과와 다른 진행경과를 거치게 할 정도로 중대하게 악화시켰거나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켰다고 추단될 수 있는 경우에는 스트레스 또는 과로와 기존 간질환의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직무와 관련된 스트레스의 적절한 관리가 각종 사업장에서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직무 스트레스가 직장인들의 심혈관계 또는 간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함께 그에 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대처 노력이 요구된다. 현재까지 과로 또는 스트레스가 간질환의 경과 및 악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거나 혹은 연관성이 없다고 제시한 신뢰성 있는 보고는 없다 하여 이를 산업재해의 영역 밖에 계속 방치하기 보다는, 산업재해의 영역 내에서 현재의 의학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보다 적극적, 규범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전체 국민의 일정한 비율에 속하는 만성B형 간염보유자들에 대한 고용차별해소의 문제는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다).

 

라. 판단

 

이 사건에 돌아와 보건대, 위 인정사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① 김○○은 주터키 대사관 근무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의 터키 방문 준비, 귀국 후 구주2과 근무시 국무총리 유럽 3개국 방문과 대통령 유럽 3개국 방문 준비를 도맡아 하는 등 통상적인 업무 이외에 중요한 외교행사 관련 업무가 폭주함으로써 계속되는 초과근무 및 수면시간의 부족으로 인하여 육체적 피로가 누적되었던 점, ② 김○○은 구주2과의 차석으로서 업무를 총괄하여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되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은데다가 이례적으로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이루어진 국무총리 유럽 3개국 방문과 대통령 유럽 3개국 방문 등 국가적인 행사의 준비, 진행 및 그 후속조치를 전담하게 되어 차질 없는 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긴장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많이 느끼는 등 장기간에 걸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 김○○이 수행한 업무의 양과 강도는 다른 동료 직원들과 비교할 때 과중하였음은 물론이고 간염환자였던 김○○의 건강상태에 비추어 볼 때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되는 점, ④ 김○○의 경우 만성 B형 간염으로 진단받은 후 10여년 만에 간암이 발병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만성 B형 간염 환자에게서 10년만에 간암이 발생하는 확률이 11%임을 감안할 때 통상의 경우보다 간질환의 진행경과속도가 빨랐던 점, 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인체의 면역체계가 약화된다는 의학적 견해 및 면역기능이 저하되면 viral load가 급격히 증가하여 간경변 및 간암으로의 진행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김○○이 외교통상부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가 김○○의 기존 질환인 간염을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켜 간암을 유발하게 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함이 상당하다.

따라서 김○○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어서 원고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관여법관

 

판사 김상준(재판장), 윤경아, 정준화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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